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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범일동매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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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一家)를 이룬다는 것.

무언가 특별한 한 방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전설이다.

 

'일가(一家)를 이루다'라는 말이 있다. 학문ㆍ예술ㆍ기술 등의 분야에서 크게 성공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피겨의 김연아나 골프의 박인비같이 어떤 영역에서 지구 최강인 사람들에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겠다. 물론 위와 같은 유명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잘 알려진 티비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은 생활 속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스 포장을 순식간에 마치는 달인에서 화투장을 단번에 세어서 담는 달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가를 이루고 전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원조범일동매떡을 보자. 일단 매운맛으로 적수가 없다. 여기 사장님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떡볶이를 먹고 나서 화내고 욕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다치고 단명할까(?)하는 생각에서 소스를 배합하고 또 배합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통각만 골라 팰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디서 매운 떡볶이 좀 먹어봤다 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 간 젊은이들을, 어떻게 하면 어좁이 애송이로 만들까 하고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다.


지옥에서 흐르는 용암을 본다면 이런 색이겠거니 싶은 소스 속에서 떡을 찾는다. 길게 주어진 떡을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고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의외로 먹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괴로움이 밀려온다. 아, 이 정도면 괜찮은가? 하고 한 조각을 더 넣으면 기존에 쌓인 괴로움에 더해서 배로 쌓인 괴로움이 밀려온다. 디바우어러에게 때려 맞는 셔틀의 심정이 이런 것인가. 먹을 때마다 차곡차곡 누적되는 충격이 묵직하게 뇌를 때린다. 찌르듯이 아픈 그런 통증이 아니다. 크게 크게 한 방씩, 정확하게 때린다.


칼칼해진 입을 달래고자 습관처럼 어묵 국물 한 숟갈을 입에 넣는다. 아 뜨거! 분명 미온수 정도의 국물이었는데 입안에 넣는 순간 펄펄 끓는 물처럼 뜨겁게 와닿는다. 팥빙수를 퍼서 서둘러 입안을 진화해보려 하지만 거센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허탈감 내지 자괴감이 밀려온다. 잠깐 먹기를 멈춘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맛없어서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 맛없는 떡볶이가 아니다. 뭔가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 있고, 진짜 열받고, 이게 뭔가 싶고, 난 왜 돈 내고 이러고 있나 싶지만 맛이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이 식당의 손님들은 다들 태연하고 맛있게들 이 떡볶이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먹다가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난다든가, 왜 이런 곳을 왔냐며 일행과 싸운다든가 그런 광경이 펼쳐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만 나라 잃은 사람처럼 인생의 고뇌를 만끽하고 있고 다들 평화롭다. 내가 매운 걸 잘 못 먹긴 하지만 이처럼 유독 나만 애송이일 수가 있을까?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아마도 이게 다 몰래카메라였거나, 저 사람들 다 사장님 바람잡이들이거나 아니면 뭐 지구를 구하던 사람들이 일 마치고 회식을 온건가 여러 억측을 해봤는데... 암튼 매떡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이 있었다. 범일동 매떡이 누군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임은 분명해 보였다.


범일동 매떡은 괴롭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람에 따라서는 약간 불쾌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런 맛으로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떡볶이의 양념이 줄 수 있는 괴로움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취는 두터운 팬심을 낳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성취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미의 정점은 하나로 통한다고 하던데 맛의 정점도 그런 것일까. 원조범일동매떡은 이루었도다. 여기를 맛집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런 매떡은 '막장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을 다루면서도 비현실적으로 자극적인 사건들이 반복해서 나타남으로써 상식적이지 못한 전개를 보이는 드라마들을 소위 막장 드라마라 칭한다. 막장 드라마라고 다 같은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자극적이더라도 초지일관 분명한 메시지나 흐름이 있다면 명작일 수 있고 사랑을 받는다. 아마도 그렇게 사랑받은 작품들이 명작의 반열에 올라 막장 드라마라는 일종의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매떡은 명작임에 틀림없고 다시금 강조하지만 일가를 이룬 작품이다.


다만 나는 다시 못 먹겠다. 아니 다시는 먹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나는 범일동 매떡에서 일주일 정도의 수명을 잃었다. 이 정도면 됐다. 더는 괜찮다. 그렇지만 이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은 또 여길 찾으리라. 그리고 한편으로 이 고통을 망각한 사람들이 또 여길 찾으리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출산의 고통이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여성들 중 많은 수가 다시 출산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는 아이를 낳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내리는 선택이지만, 출산의 고통을 어느 정도 망각하는 것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고작 떡볶이 먹는 일을 이어서 언급하는 건 송구스러우나 분명 매떡에서도 그러하리라. 묘하게 고통은 잊히고 좋은 추억과 가치만 남아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출산을 하면서 남편에게 자기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라고 했단다. 그 고통을 기억하고 둘째 생각을 안 하도록... 아니라 다를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또 매떡이 다시 궁금해지고 무슨 맛이었길래 내가 그리도 힘들었었는지 왠지 다시 먹고 싶어지고 그런 마음이 든다. 거짓말처럼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내가 벌써 세 번을 다녀왔다... 다 먹지도 못 하면서... 갈 때마다 상처받으면서... 이리도 린민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여러분도 혹시 모르니 영상을 남기시길 권한다. 혹시나 고통스러웠다면 그 고통 기억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새로 도전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먹다 보면 많이 힘들 것이다. 속 시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 글처럼 뭔가 마음이 산만해지고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그런데 자꾸 한 입을 더 시도하게 된다. 꼭 다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먹으면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이게 지금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건 호기심인지 공명심인지 허영심인지, 괴로워하면서도 자꾸만 한 입 또 한 입 더 시도하게 된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탐식을 끝내기 어려운 신기한 떡볶이.


단언컨대 매떡은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 정말 잘 만든 막장드라마, 독자적인 영역에서 어엿하게 일가를 이룬 명작이다. 먹으면서 반드시 그리고 자주 스스로를 격려해주자. 일행이 있다면 서로 응원해주자. 수저를 그만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한 입 더 시도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한바탕 치르는 전투와 같은 떡볶이, 원조범일동매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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