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와 나는... 학원을 마치고 분식트럭으로 달려가는 것이 좋았다... 떡볶이 어묵 김말이 고구마튀김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어묵국물은 엄마보다 푸근했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달려가서 무료 슬러쉬를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짐승처럼 말없이 서서 슬러쉬를 기다리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어두워진 대치동을 달리며 불빛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고춧가루와 뽀얀 어묵국물을 불어가며 뭉게구름처럼 떠오르는 뽀얀 입김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가로수의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푸드트럭 옆에 말없이 서서 떡볶이를 바라다보는 말없는 작은 짐승이었다...
올해로 마흔이 된 대치동 키드 K군은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과거를 회상해본다.
90년대 초반,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때 우리는 짐승처럼 달리곤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그 때 두툼한 가래떡 떡볶이를 푸짐하게 주시던 푸드트럭 사장님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에는 더욱 더 인심 좋은 떨이 세일을 하시곤 했다.
그리곤 타이밍 좋게 세븐일레븐에 들리게 되면
무료 슬러쉬를 득템하기도 했다.
차마 널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그 때 k군은 항상 난이에게 츤츤거리며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떨이세일과 무료슬러쉬는 수줍은 터프가이였던 사춘기의 그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전하는 단 하나의 창구였고 다행히 난이는 단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이 없었다.
국어 시간에 함께 배웠던 작은 짐승. 언젠가 멋지게 그 애에게 읊조리고자 몇날며칠을 혼자 외워봤던가.
학원이 그들을 갈라놓은 그 날까지 k군은 끝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는 항상 난이가 피워준 꽃송이가 피어있다.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Definitely, Maybe , 2007년작)의 라이언 레이놀즈처럼, 내 전부인 그녀에게 언젠가, 수줍은 아빠의 사랑노래를, 이 시를 들려줘야지.
<작은 짐승>
- 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러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처럼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 가는 붉은 산호와 흰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말없는 작은 짐승이었다
떨이 세일 기다리던 학생들은 자라서 가정을 이루었고, 인심좋은 푸드트럭 사장님은 성공해서 일가를 이루었다. 대치동 상가 거리 한복판에 자리한 개포동왕떡볶이.
모두가 인정하는 떡볶이의 명가. 양념을 가득품은 앙큼한 가래떡이 입안에서 쫄깃쫄깃 덩실덩실 춤을 추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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