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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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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

남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었다. 주로 비극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종국엔 엮인 남자들의 비극적 결말을 부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남성을 옴(므) 파탈이라 일컫는다. 남자든 여자든, 이는 '사람'이기보다는 어떤 '운명'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파멸적 운명'


이런 '파멸적 운명'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본의든 아니든 파멸을 향해 사태가 치닫는 상황'을 의미한다. 복수, 공격성, 쾌락, 정복욕, 호기심, 지루함 등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고, 본인은 딱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의 그 당사자에 대한 욕망이 주변인들을 파멸적인 결과로 빠트리는 경우도 있다. 모두 팜 파탈과 옴 파탈(이하 '팜 파탈'이라고 한다)에 의한 파멸이다.


자신을 파멸에 빠트릴 사랑이 다가올 때, 보통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파멸로 건너가는 길에는 이를 가로막는 벽이 있다. 낮게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 손해에서부터 높게는 도덕적 금기, 법률적 금지, 생명의 위험이라는 벽이 있다. 그래서 팜 파탈은 가까이해선 안 되는 걸 알고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금기인 것을 모르고 시작한 사랑은 금기를 인식하기 전까지는 파멸적이지 않다. 금기에 대해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벽이 자신을 가로막을 때 보통 돌아서기보다는 한 번쯤은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 안 되는 걸 알았다면 거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하기사, 애초에 피할 수 있으면 운명이 아니다. 저버릴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견딜 수 있다면 그건 파멸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 파멸적 운명에 충실한 나머지 파멸할 가능성에 대해 무시하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랑에 뛰어드는 경우는 차라리 낫다. 파멸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고민하고, 한 발짝 더 다가선 뒤 후회하고, 피해를 줄이고자 몸부림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는 비극이야 말로 가장 고통스럽고 절절한 비극이다. 내 삶의 기반을 쥐어 짜내고, 내 인생의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서 사랑을 맞이하려는 그 마음을 알지어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망가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빠져드는 것이 진짜 파멸적 운명이다.  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건--구애하는 일방이야 더 괴롭겠지만--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상이 본인의 애를 태우든 말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 와중에 피 튀기는 경쟁이 있든 말든 그거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무너트리면서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파멸적 운명의 본질이다. 


정제된 탄수화물 덩어리인 떡에 설탕, 물엿, 고추장 등으로 만들어지는 떡볶이는, 고혈압 환자와 당뇨병 환자에게는 절대 금기시될 만큼이나 고칼로리에다가 영양학적으로도 균형 잡히기 힘든 음식이다. 그리고 보통 곁들여지는 튀김이나 순대, 즉석떡볶이에 사리로 들어가는 라면, 가락국수, 쫄면, 그리고 볶음밥 등을 생각하면 불균형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생명력이 넘치던 시절을 지나서 조금씩 내 몸속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는 지금, 떡볶이와 우리 사이에는 건강이라는 벽이 세워졌다.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이제 떡볶이를 보내주어야 할 때인지 모른다. 지금은 가야 할 때, 그렇게 성숙하게 우리의 사랑을 청춘의 한 조각으로 묻어두고 떠나야 할 때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을 누군들 모르고 그러겠는가. 기름이 철철 흐르는 라지 세트를 주문하면서 음료는 제로콜라를 시키는 그런 마음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내 몸속 어느 한 켠에, 작은 공간, 작은 칼로리라도 비워두고 사랑하는 이를 맞이하려 하는 그 몸부림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애초에 피할 수 있으면 운명이 아니다. 저버릴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시켜라 떡볶이를, 곁들여라 튀김을. 

볶을 수만 있다면 볶아라 볶음밥을. 

그냥 떡볶이든, 즉석 떡볶이든, 퓨전 떡볶이든, 

그것은 '음식'이기보다는 어떤 '운명'이다. 

조그맣게 불러본다. 떡볶이여, 파멸을 부르는 그대의 이름이여. 


굵은 가래떡과 큰 어묵이 이루는 큰 선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진한 소스가 선사하는 강렬한 색상은 눈길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고 조근조근 속삭이는 듯한 아기자기하고 교과서적인 맛은 교태롭다. 찰기를 잃지 않는 싱싱한 떡볶이는 끈적한 소스와 힘겨루기라도 하는 듯 씹으면 씹을수록 매혹적인 식감을 만들어낸다. 셀프바에서 제공되는 양파까지 곁들인다면 시원한 맛과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진다. 

 

얼마나 다행인가. 상국이네 떡볶이가 즉석떡볶이였다면 떡볶이에 튀김까지 다 먹고도 우리는 라면을 끓였을 것이고 밥도 볶았을 것이야.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중이라고? 소스에 밥을 비빈다구? 그래 그것도 역시 어떤 운명이다. 

 

아아 떡볶이여. 파멸을 부르는 그대의 이름이여. 

상국이여, 자꾸만 빠져드는 그대의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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